식용유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되는 필수품입니다. 사전에 따르면 식용유는 ‘15℃에서 완전히 액상이 되는 식물성 기름’이라 정의됩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채집을 통해 다양한 식물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 기름을 짜낼 수 있는지, 나아가 그 기름으로 요리하면 음식이 맛있어진다는 사실까지 말이죠. 여러분은 이런 식용유도 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식용유는 물과 섞이지 않아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한정 보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식물성 기름은 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상하기 쉽습니다. 식용유는 적절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색과 질감이 변하고 불쾌한 냄새까지 나게 됩니다. 어째서 식물성 기름인 식용유는 잘 상하는 것일까요? 식용유는 대부분 트라이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라는 분자로 구성됩니다. 이 거대한 분자는 중성지방이라고도 불리죠. 중성지방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지질의 한 종류입니다. 중성지방은 한 개의 글리세롤(glycerol)과 세 개의 지방산이 결합된 화합물로 식용유의 9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중 지방산은 매우 긴 탄화수소 사슬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지방산은 포화 탄화수소와 불포화 탄화수소가 혼합돼 있습니다. 지방산 중 포화 탄화수소의 비율이 높은 경우엔 버터처럼 단단한 형태, 불포화 탄화수소의 비율이 높은 경우엔 식용유처럼 액상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지방의 형태를 결정하는 포화, 불포화라는 용어는 탄화수소를 구별할 때 사용합니다. ‘포화’란 탄소의 화학결합이 완료돼 더 이상 결합을 만들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포화 탄화수소는 모든 탄소 간의 결합이 단일결합이므로 화학결합을 더이상 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불포화 탄화수소는 일부 탄소 원자 사이에 다중결합이 있어 추가적인 화학결합이 가능합니다. 화학결합을 더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반응을 더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불포화 탄화수소가 포화 탄화수소보다 더 반응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중결합을 포함한 불포화 탄화수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됩니다. 이중결합에 결합된 치환기의 위치가 서로 같은 방향이면 시스(cis) 형태, 다른 방향이면 트랜스(trans) 형태라고 하죠. 그리고 특정 형태를 더 많이 포함한 지방산을 각각 시스 지방산, 트랜스 지방산이라고 부릅니다. 두 가지 형태는 상호 변환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단일결합이 회전할 수 있는 반면에 이중결합은 회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형태의 관계를 ‘기하 이성질체’ 또는 ‘시스-트랜스 이성질체’라고 표현합니다. 이성질체란 분자식은 똑같지만 구조가 달라 화학적 성질이 다른 화합물입니다. 불포화 지방산은 동물보다 식물에서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식물성 지방을 불포화 지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불포화 지방산은 시스 구조와 트랜스 구조를 가질 수 있지만 자연에서 얻는 불포화 지방산은 대부분 시스 형태입니다. 입체적으로 다른 구조를 가진 두 이성질체는 에너지 안정성도 다릅니다. 시스 구조와 트랜스 구조 중 에너지적으로 안정된 것은 대부분 트랜스 구조입니다. 이것은 두 구조를 함께 그려 비교하면 쉽게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치환기는 수소에 비해 거대합니다. 시스 구조는 이 거대한 치환기들이 한 쪽에 몰려 있습니다. 이들은 입체적으로 서로 부딪히며 에너지적으로 불안정해집니다. 반면 트랜스 구조는 치환기들이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시스 구조에 비해 훨씬 안정합니다. 물질은 보통 에너지적으로 불안정할수록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쉬워 반응성이 큽니다. 따라서 시스 구조를 갖는 식용유는 상대적으로 쉽게 화학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반으로 쪼갠 사과를 오래 두면 색이 변하는 갈변현상을 본 적이 있나요? 이것은 사과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반응을 일으킨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스 구조의 기름 역시 산화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기름의 색이 변하거나 냄새가 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죠. 일상에서 우리는 이 변화를 보고 기름이 상했다고 말합니다. 화학적으로 엄밀하게 표현하면 기름의 산패 반응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학반응인 산패가 일어나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화합물이 형성되어 불쾌한 맛과 냄새를 유발합니다. 모든 식용유는 주방에서 뚜껑을 여는 순간 공기 중의 산소와 수분에 노출되며 산패 반응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강한 열이나 빛이 가해지면 산패 속도는 더욱 빨라지죠. 사실 식용유의 산패를 완벽하게 막는 것은 어렵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식용유와 공기가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다만, 식용유를 잘 보관하고 사용한다면 산패 속도를 늦출 순 있습니다. 이미 개봉한 식용유는 되도록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너무 오랜 기간 보관하지 않도록 해야 하죠. 한번 가열한 기름은 재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트랜스 형태의 식용유를 만들면 더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진 않을까요?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트랜스 지방은 인체에 매우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에서 얻는 지방산은 대부분 시스 형태입니다. 인체의 지방산 대사 효소들은 대부분 시스 형태 지방산을 대사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에 트랜스 구조의 지방은 잘 대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트랜스 지방은 체내에서 분해나 배출이 잘 되지 못하고 쉽게 축적되죠. 이로 인해 심혈관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식용유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지만 쉽게 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식용유의 화학적 특성과 보관 방법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식생활을 더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의 집의 식용유가 적절하게 보관되고 있는지 잘 살펴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