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A 씨는 연필심과 다이아몬드가 같은 탄소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A 씨는 그때부터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연필심 재료인 흑연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겠어! 그때부터 A 씨는 흑연을 가열해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실험을 합니다.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 금을 만들고자 했던 중세의 연금술사와 같은 꿈을 꾼 것입니다. 과연 A 씨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겉보기에 너무 다른 둘은 사실 같은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형제 사이, 즉 탄소 동소체입니다. 같은 원자로 이루어졌는데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는 탄소가 결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흑연은 탄소 원자가 다른 탄소 원자 세 개와 결합을 이어 나가며 만들어지는 육각형의 판이 여러 층으로 쌓여 있는 구조입니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하나의 탄소 원자가 다른 탄소 원자 네 개와 결합한 3차원의 정사면체 구조입니다. 이렇게 결합 방식에 따라 쉽게 부서지는 흑연이 되기도 하고,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탄소의 배열과 결합 방식을 바꾸면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만들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 물질이 새로운 물질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처음의 연결을 끊어내고 다른 순서와 형태로 결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넘어야 할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장벽을 넘어 화학 반응이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활성화 에너지라 부릅니다. 활성화 에너지가 충분히 있어야 이전의 화학 결합이 끊어지고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새 구조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간편하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가열하는 것입니다. 온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분자들이 갖는 에너지 총량 역시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A 씨의 실험처럼 흑연을 높은 온도로 가열했을 때 다이아몬드로 바뀔까요? 아뇨.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열을 가하더라도 흑연이 다이아몬드로 전환되는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맨틀에 있는 탄소가 1300℃의 높은 온도와 3만 기압의 높은 압력을 받아야 만들어집니다. 그것도 10억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 말이죠. 육각형으로 연결된 탄소 원자들이 사면체로 재배열되려면 엄청난 시간, 열, 압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가열 실험으로 이 장벽을 넘어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이 장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유지하는 장치입니다. 모든 화학 반응이 활성화 에너지 없이 진행된다면, 세상은 가장 안정된 몇 가지 분자로만 이뤄졌을 것입니다. 더이상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화학적 죽음을 맞이한 세상 말입니다. 공기 속 질소 기체는 수소와 만나 암모니아로 가득한 대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땅속 화석 연료들은 산소와 만나 수많은 이산화 탄소로 지구를 거대한 온실로 이미 바꿔 놨을 수도 있습니다. 이 장벽을 넘는 것은 등산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산에 오르거나 높은 언덕을 넘어가야 할 상황이라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충분한 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활성화 에너지는 산을 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입니다. 활성화 에너지의 높낮이는 화학 반응마다 다릅니다. 해발 200m의 낮은 산과 8,849m의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할 때 필요한 힘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성냥에 불을 붙이면 일어나는 연소 반응은 활성화 에너지가 낮습니다. 반면 질소와 수소를 결합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과정은 활성화 에너지가 높습니다. 약 27,700℃의 고온이 필요할 정도로 높은 장벽을 갖습니다. 이로 인해 대기 중 낙뢰의 도움 없이는 발생하기 어려운 반응입니다. 낙뢰가 빈번하면 풍작이 든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죠. 그렇다면 이 장벽을 낮춰 화학 반응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순 없을까요?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기 어렵듯 화학 반응의 장벽 높이 자체를 낮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높은 언덕을 피해 조금 완만한 길을 거쳐 갈 수 있도록 지름길을 제공하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촉매입니다. 오늘날 낙뢰의 도움 없이 암모니아 합성이 가능해진 것도 철 촉매를 사용해 반응 속도를 향상시켰기 때문이죠. 활성화 에너지는 화학 반응에 조건과 방향을 만들었습니다. 장벽의 높낮이를 파악하고 우회할 수 있는 지름길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편리한 현대 문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흑연을 쉽게 다이아몬드로 만들 수 있는 촉매가 나올 수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