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봄날 호숫가에서 한 여인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치마는 보라색입니다. 크게 확대해 보면 빨간 실과 파란 실이 교차로 짜여 보라색으로 보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인의 치마폭에는 작은 벌레가 한 마리 붙어 있습니다. 이 벌레는 호숫가의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멀리 보지 못합니다. 또한 치마의 가느다란 빨간 실과 파란 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물체도 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 벌레가 보는 세상은 온통 보라색인 2차원 평면뿐입니다. 한 가지 색만 본다는 것은 색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벌레는 이 세상이 단색의 2차원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벌레는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전 우주에 확대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벌레에게 세상은 총천연색의 3차원이라고 이야기해 줘 봅시다. 벌레는 이 세상에 색이라는 개념이 있고 자신이 보는 것보다 세상의 차원이 크다는 사실을 듣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보고 느껴본 적이 없는 사실은 상상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죠. 인간은 이 세상이 4차원이라든가 11차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원의 세상을 상상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벌레가 경험한 세상은 단색의 2차원뿐입니다. 하지만 똑똑한 벌레라면 우주가 총천연색 3차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색을 보지 못하지만 총천연색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뭇잎에는 초록색 물감을 사용하고, 꽃에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물감을 쓰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다른 벌레에게 이런 규칙을 가르쳐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색을 보지 못하니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인간 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우리는 1 ㎞ 밖에 서있는 두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우므로 그 정도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상한선입니다. 그리고 1 ㎛보다 작은 물체를 볼 수 없으므로 그 정도가 하한선입니다. 우주는 초속 30만 ㎞인 빛의 속도로 가도 경계까지 135억 년이 걸리는 크기입니다. 반면 우주 안의 가장 작은 물체는 0에 한없이 가까워집니다. 우리가 우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범위는 벌레가 호숫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범위에 비해 결코 넓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경험하는 현상들은 우주나 원자 차원의 세상에서 똑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역시 벌레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벌레가 3차원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듯, 인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양자 물리 이야기만 나오면 거대한 벽을 느끼곤 하죠. 양자 물리는 물리학자들이 발견했지만 그들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지식으로 알고는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양자 물리를 발견한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벌레와 다르게 지구에서의 제한된 경험을 우주나 원자 차원의 세상에 확대 적용하지 않은 것이죠. 이렇게 물리학자들은 신이 인간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세계의 법칙을 알아내 양자 물리를 발견했습니다.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소문만 듣고 담장 안 세상의 규칙을 알아낸 것입니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규칙을 말이죠. 이제 양자 물리는 왜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지 알겠죠? 그럼에도 물리학자들은 벌레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에 머무르지 않고 양자 물리를 발견했습니다. 2차원의 보라색 평면 속에서 가느다란 빨간 실과 파란 실을 발견한 것이죠. 물리학자들은 원자 세상의 법칙을 알아내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원자를 조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슈퍼 컴퓨터도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를 푸는 양자 컴퓨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양자 물리의 발견은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승리입니다.